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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일본사상사학회 日本思想 日本思想 제26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9 - 9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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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뒤에 일방적으로 기록한 사행록보다는 현장에서 쌍방이 마주앉아 기록한 필담이 원래의 기록 그대로를 보여줄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만 조선측 사행원들이 귀국한 뒤에 필담집이 출판되기 때문에, 조선 문인들은 필담초(筆談草)가 그대로 출판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신묘사행(1711)의 정사 조태억과 에도막부의 시강(侍講) 아라이 하쿠세키[新井白石]의 필담은 조선과 일본에서 출판된 유일한 필담인데, 서로 다른 부분이 많다. 다른 필담집들이 통신사 사행 직후에 상업적으로 출판된 것과 달리 80년 뒤에야 정치적으로 출판되었고, 전집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스즈키 기미아츠[鈴木公溫]의 서문이 덧붙어 1789년 교토의 서점 하치몬지야 쇼베에[八文字屋正兵衛]에서 간행된 『坐間筆語 附江關筆談 全』은 역지빙례(易地聘禮)를 추진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라고 출판한 것이다. 통신사 사행원들과 일본 지식인들 사이의 필담은 민간외교의 한 형태였으므로,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진행되었다. 특히 일본 지식인 쪽에서는 필담을 얻어내기 위해 공손했지만, 출판할 때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위상을 돋보이기 위해 공격적인 서문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을 변개한 것은 아니지만, 이중적인 태도는 분명하다. 조선 사신에 대한 일본 문사의 양면성에 대해서는 일찍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과연 뿌리 깊은 부정적 조선관에 기인한 것인지, 일본 국내 독자들에게 자신들을 내세우기 위한 것인지, 다양한 자료를 통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 지식인들만 현장의 기록을 변개한 것은 아니다. 무인 이지항이 북해도에 표류하여 마츠마에에서 공술한 기록과 귀국한 뒤에 동래에서 공술한 기록을 비교해보면, 달라진 부분이 상당히 많다. 다르게 기록된 부분이 이지항이 망각한 것인지, 은휘한 것인지, 하나의 자료만 가지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한일 관계를 연구할 때에 관련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함은 분명하다. 앞으로 200여 종의 통신사 필담창화집을 모두 분석해보면 필담의 내용이 얼마나 변개되었는지, 마주앉아 필담하는 태도와 돌아서서 서문을 지어 출판하는 태도가 얼마나 이중적이었는지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선측의 표류기에도 이중성이 나타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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