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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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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26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79 - 31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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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제국의 해체 이후 학술 사상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종래의 經學 일변도의 학술 분류가 經史子集 등 여러 분야로 분류되기 시작하였으며, 史學의 발전은 특히 두드러진 일로 평가되어 왔다. 이 글은 2~3세기(後漢末 魏晉시기) 史學의 발전을 지역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지식의 교류와 융합의 과정이 史學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자 하였다. 특히 당시 史學이 학술을 주도했다고 평가되는 巴蜀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譙周의 『古史考』, 陳壽의 『三國志』, 常璩의 『華陽國志』 등 이 지역 출신 학자들이 생산한 史書들은 漢晉 간 역사학의 대표적인 성과들이었다. 후한 제국의 해체 이후 대규모의 인구 이동은 파촉 지역의 학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수의 고문 경학자들이 유입되었다. 이주 가문 출신인 郤正은 劉知幾의 『史通』에서 蜀漢의 史官으로 소개되었는데, 그의 열전에 남아있는 『釋譏』라는 글은 漢代에는 만나기 어려운 새로운 역사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역사는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자연의 흐름과 같은 것이고, 그 안에서 영위하는 本性에 따르는 삶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道家的 합리주의에 기초한 역사관이 巴蜀에서도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 의식은 여러 요소들이 겹치면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패망을 앞둔 촉한의 정치 상황에 대한 체념 뿐 아니라, 정치적 명분보다 역사를 중시하는 고문 경학이 파촉으로 유입되어 영향을 미친 점, 그리고 파촉인들에게 확산된 曹魏 受命의 讖緯 등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파촉의 사례는 후한 이후 역사학의 발전을 이해할 때, 서로 다른 학술 문화의 융합이라는 측면이 깊이 고려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陳壽의 『三國志』가 합리적인 역사 서술과 대량의 讖緯를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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