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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18권 제1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203 - 22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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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 주자학의 수용은 佛敎를 統治理念으로 삼아 왔으나 후기에 이르러 사회제도적인 폐단이 만연하게 된 問題를 해결하고자 고심하는 가운데 시작된 것이다. 조선 건국 후 儒學은 새로운 왕조에서 정치ㆍ제도적 문제로서 이를 실천하여 나가는 時代的 課題가 되었다. 太祖 이래 崇儒政策으로 말미암아 性理學은 날로 발전하였고 많은 人材들이 배출되었으니 특히 世宗朝에 이르러서는 朝鮮文化의 黃金期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集賢殿 學者들을 中心으로 수많은 儒者들의 出現을 보게 되어 가히 東方의 儒學을 꽃 피울 준비는 다 갖추어졌다. 세조 이후 절의파의 형성은 在野의 세력이 되고 여말 절의파 후손인 김종직은 士林派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이들의 학문계통은 金宗直⋅金宏弼⋅趙光祖로 傳受되었다. 燕山朝에 勳舊勢力과 士林派 간의 士禍가 발생하여 사림들의 희생자가 발생하고 中宗이 卽位하여 燕山君의 폐정을 개혁하고 風化를 振作하려 할 때, 道學政治를 실현하려고 하는 기운이 일어났으나 己卯士禍가 일어나 趙光祖와 같이 했던 신진 사림들의 이와 같은 뜻이 수포로 돌아갔다. 士禍以後로 士林들은 政治的 現實에 뛰어드는 것을 꺼리고 隱居하여 獨善에 힘을 기울이는 傾向을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으로 조선의 유학이 이론과 사색의 경향으로 일변하게 되었다. 화담과 회재는 16C초 조선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 인물이다. 화담은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기피하고 학문에 전념하여 기일원론을 주장하는 한국적 유학의 독특한 경지를 펴 나갔다. 그러나 화담이 추구하는 궁극적 경지는 이와 기가 합일되는 妙處인 것으로, 그를 이의 실재성을 부인하는 주기론자, 심지어 유기론자로 규정하는 것은 올바른 평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회재의 경학연구는 현실 정치와 관련시켜 연구했다는 점이 독창적이고 주자를 넘는 경지였다. 회재의 정치의식은 경학연구로 표출되었다. 회재가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화평하게 하는 정치의 요체를 ‘인’으로 규정한 것은 그의 민본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모든 방도는 군주의 마음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16세기의 性理學의 特徵은 朱子學을 한국화 시킨 것이다. 따라서 朱子의 철학체계를 어떤 식으로든 재해석해 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 朱子學의 변용을 통해 朝鮮 朱子學의 獨自性을 확보해 내는데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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