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23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263 - 285 (2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구암 이정(1512-1571)은 1544년 그의 나이 33세 이후 퇴계를 사사하여 그 학문을 표적으로 삼아 자신의 학문을 이루려 하였음은 물론, 인근 고을에 거처하던 남명과도 끊임없이 친분 관계를 유지하며 그 고상한 정신 경계를 추앙하여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구암의 「신명사부」는 남명의 「신명사도명」과 명칭만 유사한 것이 아니라, 남명 사상의 핵심이라 할 경의 사상을 자기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구암은 퇴계와 함께 남명을 자신의 학문 표적으로 삼아, 평생을 성의와 집념으로 위기지학에 종사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퇴계는 주자학적 방법만으로도 성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주자학만을 고집하는 崇正學의 기치를 내걸어 이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指斥하기에 이르렀다. 남명은 성현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주자학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 학문 방법으로 원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퇴계는 목적을 위해서는 방법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남명은 자신에게 맞는 여러 방법을 사용하여 목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구암이 학문의 표적을 퇴계에게도 두고 남명에게도 두었으나, 세상에서는 대체로 구암의 학문이 퇴계를 이은 것으로만 언급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암의 학문 표적을 퇴계에게만 두고 남명과는 친분 관계 이상의 학문적 영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구암의 학문에 대한 진실한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로 인해 남명학파 내에서도 구암의 위치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를 찾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제 우리는 구암을 한강이나 동강처럼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를 아우르는 노력을 한 초기 인물로서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덕계가 퇴계・남명 양현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한강과 동강을 이끌어 양현의 학문을 겸하도록 하는 데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듯이, 구암은 덕계나 한강・동강보다 먼저 양현의 학문을 표적으로 하여 하나의 통합된 학문을 추구하였다고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8)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