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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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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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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69 - 30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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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의 ‘임신의 난’에 대한 전란의 범위는 대규모의 전투가 긴키(近畿)와 동해(東海)지방에 까지 이르렀으며, 그 영향은 동국(東國)에서 규슈(九州)까지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광범위한 지역에 미친 전란의 범위는 당시의 왜의 거의 전역을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아울러 갑작스런 왕위의 변동을 동반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이 전란은 주로 왜의 국내문제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왔다. 그런데 ‘임신의 난’의 거의 10년 전인 663년에는 동아시아세계의 구성원들이 모두 엉겨 붙었던 ‘백촌강 싸움’이라는 국제 전쟁이 있다. 이 국제 전쟁은 당시의 동아시아세계를 구성한 당, 고구려, 백제, 신라, 왜가 관련되어 벌인 전쟁이었다. 이 국제 전쟁의 발생으로부터 불과 10년이 경과되지 않은 시기에 벌어진 또 하나의 전란은 왜를 격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아시아세계를 뒤흔드는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가 쳤던 7세기 말의 국제 정세를 감안하고, 그 위에서 ‘백촌강 싸움’과 ‘임신의 난’을 다양하고 복잡한 국제 정세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제대로 규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의 동아시아세계가 중국(수와 당), 한반도 3국(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열도의 왜였던 것에 비하여, 이후의 동아시아는 당・신라・일본으로 재편되게 된다. 요컨대, ‘임신의 난’의 현재적 의의는 지금의 동아시아세계의 원형을 7세기 후반기에 구하게 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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