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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史叢(사총) 史叢(사총) 제8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3 - 2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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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閑集』의 저자 이인로가 참여했던 海東耆老會는 고려중엽 퇴직한 문신 관료들이 여가를 즐기고자 만든 詩會 모임이었다. 기로회는 중국 당․송에 있었던 것인데, 고려에서는 해동기로회가 최초의 기로회였다. 그런데 해동기로회를 전후하여 ‘耆老’라는 단어의 의미가 변화하고 있어 주목된다. 해동기로회가 결성되기 이전인 고려전기에 耆老는 ‘나이 많은 늙은이’라는 의미였으며, 사회적 약자로서 휼양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耆老는 모든 노인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노인 중에서도 庶民을 뜻하였는데 관인 가운데 耆老에 해당하는 자들은 ‘國老’라고 하였다. 때문에 사료에서는 國老에 대비하여 庶民 耆老는 ‘庶老’라고 표기하였다. 해동기로회 이후로 耆英會, 耆舊會라는 명칭의 모임이 줄곧 결성되는데, 이는 고려후기 퇴직한 문인관료들의 사적 네트워크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耆老가 단순히 노인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國老와 유사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고려후기 사료에 등장하는 耆老는 고려전기의 庶老가 아니라 60세 이상의 宰相 또는 致仕한 사람을 뜻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耆老가 국정에 참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처음 결성되었을 때의 해동기로회는 단순한 여가모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耆老가 현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은 해동기로회의 구성원이 퇴직한 고위 관료들이었던 것과 관련된다. 해동기로회는 무신정권의 비호아래 유지될 수 있었으며, 기로회 회원들은 지위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집정자와 관계를 지속하였다. 기로들은 비록 퇴직한 재상이지만 무신집정자와 연결되어 있었고, 이들이 문신관료로서 지니고 있던 권위와 지식인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무신집정자 입장에서도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었다. 무신집정자의 퇴직관료 모임에 대한 후원은 이와 같은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집정자 및 국왕과 연로한 고위관료들의 관계가 고착되면서 형성된 것이 바로 고려후기 기로의 정치참여 형태로 계승되었을 것이다. 해동기로회의 역사적 의의는 바로 이 점에 있었으며, ‘耆老’의 의미가 ‘國老’로 변화하게 된 것도 이러한 결과에서 비롯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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