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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10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77 - 20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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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통 성리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퇴계 이황은 생후 7개월 만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장성한 후, 23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학습하며 과거를 세 번 보고 세 번 다 낙방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였다. 그러나 당면한 정신적 충격과 고통에도 좌절하지 않고 각고의 노력을 거듭한 결과, 27세부터 과거에 합격하기 시작하였다. 34세에 승문원 부정자라는 관직을 시작으로 49세에 풍기군수를 마지막으로 후학양성과 학문연마에 뜻을 두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그의 소원대로 귀향하여 도산서원에서 󰡔주자서절요󰡕 등의 학문연구와 본격적인 제자 양성에 주력한 결과, 중앙 관계를 주름잡는 영남학파를 형성한다. 향리의 학문풍토를 조성한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을 비롯하여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한강 정구(寒岡 鄭逑), 월천 조목(月川 趙穆) 등의 유명한 인재가 배출되었다. 대학자인 퇴계의 일관된 근면 성실의 소박한 학문 자세는 덕과 교양을 겸비한 후덕한 학자의 명성 외에도 한사람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현실생활과 학문생활을 엄격히 구분하여 최후까지 학자의 본분을 지킨 ‘성학자(聖學者)’로서의 평가가 주를 이룬다. 제자들은 스승 퇴계 학문의 깊이를 공자․맹자의 도를 동양에 밝힌 유일한 사람으로 공자 맹자이후에는 퇴계선생 한 분뿐이라고 평가하였다. 또 관학의 유생들은 퇴계를 두고 「신명(神明)󰡕, 즉 신처럼 존경하고 받들었을 정도로 최고 존숭의 대상이 되었다. 퇴계의 철저한 수양과 인격적인 태도의 품격 높은 생활상이 담긴 고원한 철학의 평가는 당시 조선사회 뿐만 아니라 바다건너 일본 에도시대 유학자들에게도 높이 존경되어 조선에 대한 문화적․학문적인 친근감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어 현재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도학자로 널리 각계 각 층의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퇴계 만년인 68세 때에 17세의 어린 선조에게 성군이 되라는 바람에서 헌상한 퇴계 학문의 결정체인 󰡔성학십도󰡕의 구성과 사상 및 일본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성학십도󰡕의 작성 배경과 내용 및 전파에 관하여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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