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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12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161 - 19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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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의 조선문학강좌를 담당한 다카하시 도오루(高橋亨, 1878―1967)의 한국학 연구의 특징과 의의에 대해서고찰한 것이다. 다카하시는 전 생애를 걸쳐 한국 사상사 및 문학을 연구한 인물로서 그의 연구는 유교 • 불교 • 문학의 세 가지 영역을 넘나드는 것이었다. 저작 활동도 활발히 하였으며 대표적인 저작으로 『이조불교』 및 「조선 유학사에 있어서 주리파 • 주기파의 발달」 등이 있다. 이제까지 학계에서는 다카하시를 어용학자로 규정한 후 그의 저술 속의 제국주의적 요소를 비판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카하시의 한국학 연구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즉 40여년에 달하는 한국 체류 기간 동안의 그의 연구가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그 변화의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카하시의 유학 연구는 초기와 후기의 퇴계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달라진다. 초기 무관심에서 비판으로 넘어가고 이러한 퇴계를 필두로 한조선 유교에 대한 비판은 민족성 논의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1930 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斯文』에 「이퇴계」를 연재하며 퇴계를 「위대한 유학자」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외적인 요인으로 황도 유학으로 이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되기도 했으나 조선의 유학에 대한 내재적인 인식의 변화 가능성 또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어 및 한국 문학을 독창성이 없는 중국의 모방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하던 다카하시는 스스로 본업이라고 칭한 한국 문학 연구를 진행하며 한국어에 대한 한계와 스스로의 연구에 대해 반성하게 된다. 특히1928년에 착수한 민요 연구를 통해 점차 한국 문학의 가치를 인정해 나가기에 이른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 1921년 『조선인』의 발표로 정점을 찍었던 민족성 논의 역시 사그라들며 퇴계에 대한 평가도 높아지게된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한국학 연구가 일정부분 내재적으로 성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그의 전반적인 연구를 개관함으로써 그 변화와 요인을검토해 왔다. 분야별로 다카하시의 연구를 충분히 분석하는 것과 다카하시와 같은 일제강점기 재한 일본인 학자의 활동과 업적을 객관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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