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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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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영남퇴계학연구원 퇴계학논집 퇴계학논집 제8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63 - 102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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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이 남명 조식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살핀 것이다. 조선유학사에서 퇴계와 남명의 위상은 재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후일 퇴계계열은 남인으로, 남명계열은 북인으로 갈렸는데, 남북의 분열은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서로 다른 기질과 학문 성향 등 이질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두 학자는 타고난 기질, 학문 경향, 학문하는 태도, 현실 인식 등에서 너무 다른 모습을 보였다. 공통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문 태도와 삶의 방식이 달랐다. 퇴계가 학자이면서 관료로서의 삶을 병행했다면, 남명은 고결한 선비의 풍모를 지켰던 전형적인 처사형(處士型) 선비였다. 그들은 서한을 통해 서로 예우와 존경의 마음을 다하였고 정신적 교유의 아쉬움을 토로하였지만, 근본적으로 학문 태도와 삶의 방식이 다르다보니 상대의 학문을 인정하지 않거나 삶의 태도를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것은 후일 퇴계 계열과 남명 계열의 불화로 이어졌고, 나아가 학파와 당파로 분화하게 됨으로써 조선 후기 사상사, 정치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양현이 상대방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였는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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