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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육군군사연구소 군사연구 군사연구 제131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99 - 242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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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있어서 전쟁은 각국의 국가형성과 발전과정에서 매우 긍정적인 결과도가져오기도 하지만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가야는 약 400년간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그 와중에 중국과 왜, 그리고 주변 말갈과의 국제관계까지 얽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 가운데 고고학적 성과로서의 백제는 군사관련 유적․유물이 많다고 할 수 없다. 신라․가야에서는 무기를 대량부장하는 것이 지배자의 상징이 관념체계 덕분에 가시적이고풍부한 군사 유물을 자랑한다. 이에 비한다면 백제고고학에서의 군사연구 비중은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유는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주로 주거지나 관방유적에서 1점씩 조각으로 발견되어지기 때문에 완전한형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삼국이 정립하고 있는 시기 백제만 방어장구가미비되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출토맥락을 면밀하게 따져 백제갑주의 정체성을 찾아보았다. 백제갑주의 형태는 찰갑이다. 투구는 한반도 전역이 동일하게 종장판주제작전통을 가진다. 백제가 이전의 유기질제 찰갑에서 철제화를 실현화시킨 시기는 4세기 초에 고구려와 낙랑대방군을 축출하는 과정에서이며, 실물은 4세기 후반에 나타난다. 이찰갑은 북방 선비족의 찰갑과 유사하며, 4세기~5세기 초 동아시아 전역에 유행하게 되는 찰갑으로 보았다. 5세기의 백제찰갑은 동환식․외중식으로 나머지 삼국과 동일하다는 의미는 삼국이 전투능력, 전투장비, 전술을 유지하고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갑주는 대량생산되기 시작하여, 갑주의정형화가 이루어지는데, 소찰의 규격화, 정량화, 숙련된 연결기법, 활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들이 자체적으로 모색되었겠지만 결국 삼국이 유사한찰갑제작 설계원리로 나아간다. 한편 475년 한성백제가 멸망하면서 영산강유역 주변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군소수장들이 백제․가야․왜 등 다양한 정치체와 연대를 모색하면서 세력화하였다. 이들은 재지 기반을 바탕으로 백제와 왜의 묘제와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섭함으로써 이 지역의 유력집단으로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왜에서 반입되는 위신재의 하나가 왜계갑주인 것이다. 6세기대에 백제 찰갑은 이전과 동일한 동환식․외중식 찰갑과 함께 중국식 양당개의 기술전통이 유입되며, 이는 사비시기 문화양상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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