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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중앙문화재연구원 중앙고고연구 중앙고고연구 제8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57 - 18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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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에는 적어도 5개의 고총군이 존재하고 이는 마립간기에 존재했던 세력집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대구 달서고분군, 달성 화원 성산고분군,대구 불로동고분군, 칠곡 구암동고분군, 달성 문산리와 죽곡리고분군이 그것으로이는 적어도 당시 읍락이라 부를 수 있는 집단의 존재를 상정하게 한다. 이들 가운데 남아 있던 고총 대부분이 발굴된 것이 문산리와 죽곡리에 분포하는 고총이다. 이들 고총은 이들만의 고유한 묘형을 가지고 있어 정체성을 나타내며, 연대의검토 결과 5세기 2/4분기에 축조가 시작되어 5세기 4/4분기에 중단되었다. 이렇게 단기간에만 고총이 축조된 것은 그 고총의 축조집단이 원래의 중심세력으로 존재하지 않던 집단이었고, 신라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해 나타난 결과이다. 신라가이들을 지원한 것은 군사적인 목적이 크게 작동된 것으로 낙동강으로 진출하는 과정상에서 이곳의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다. 그리고 신라 지방의 일반적인 고총군보다 일찍 고총의 축조가 중단된 것은 그러한 군사적인 목적이 소멸된 때문으로 볼수 있어 적어도 5세기 말이면 낙동강의 중하류에 대한 신라의 지배권이 안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신라의 지방고총이 해당지역 중심세력으로 성장하던 집단을 통제하는 지방지배의 목적에서의 지원에 의한 결과만이 아니라 신라가 군사적이건 경제적이건 어떤 목적에서 이전까지는 미약한 세력을 지원하여 고총을 축조할 만큼 성장시킨 집단도 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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