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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67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5 - 14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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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의 제도와 문화를 색다른 시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작성한 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제도와 문화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고, 나아가서는 비판의 근거도 마련하기가 힘들 수 있다. 이에 조선의 제도와 문화를 중국과 비교하면서 서로의 차이점과 이 차이점이 발생하게 된 배경, 그리고 이를 통해 조선 사회를 진단하고자 했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하여 주로 살펴본 자료는 󰡔조천록󰡕과 󰡔연행록󰡕,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자료이다. 조천록과 연행록은 조선 사신의 일행이 중국에 가서 생각을 온통 중국의 제도와 사회·문화 같은 다양한 현상에 집중할 수 있던 때였다. 몇 달에 걸쳐 다니면서 자연 조선에서 보고 학습한 생각을 표출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사회의 제도와 문물 중에는 중국에서 들여와 시행한 것이 많은데, 이중에는 대체로 최초로 도입했던 시기의 원형에 변화를 주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며 계승시킨 경우가 많다. 조선에서는 전통적으로 송학 중심의 성리학을 계승하여 발전시켜 왔는데, 그 원론을 고수한 면은 중국과 달랐다. 반면 중국에서는 라마 불교나 장자·양명학 같은 다양한 사상이 상호 충돌을 최소화 하면서 독특한 양식으로 존재하며 발전하였다. 조선 사신의 일행은 해외에 가서 이런 중국의 현실을 보고 비판을 하기도 하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선 문인이 유학을 중시했던 입장은 명나라 사신과 位版을 두고 있었던 논쟁에서도 나타난다. 명나라 嘉慶 때 공자의 位版을 ‘大成至聖文宣王’에서 ‘至聖先師孔子’라고 바꾸었다. 공자의 위상을 강등한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여전히 ‘大成至聖文宣王’이라고 사용하고 있었다. 정유재란 때 명나라 萬世德이 經理가 되어 조선에 왔다가 공자의 신위가 명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바꿀 것을 요청한다. 조선에서는 공론이 벌어졌으나 결국 바뀌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大成至聖文宣王’이라는 위판을 사용하고 있다. 공자의 尊號를 함부로 바꿀 수 없었기 때문인데, 조선에서 공자가 차지하는 위상이 중국과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의 문화도 다른 점이 있었다. 조선 선비들은 직접 시장에 가서 사는 것을 꺼려 동자나 심부름꾼을 보내어 물건을 샀다.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중국은 다르다. 고관대작이라도 시장에 가서 물건을 감상하고 흥정하며 샀다. 상례문화도 달랐다. 조선에서는 주자의 가례가 원론에 입각하여 충실하게 지켜졌으나 중국에서는 문관과 무관이 상례를 지키는 방식이 달랐다. 특히 흰 복장은 조선 사람들의 평상복장이기도 하였는데, 중국에서는 상례 때 입는 복장이었다. 이상의 고찰을 통하여 조선 사람들은 해외체험을 통하여 조선의 현실을 진단하기도 했고, 또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문화에는 중국과 다른 독특한 요소가 많다. 비슷했던 문화 중에도 시기를 달리하면서 각각의 환경 속에서 다르게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륙에서 유행하고 있는 韓流도 문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와 중국이 서로 비슷하면서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그 源流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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