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29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51 - 396 (4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의 목적은 전시체제기 일본 유학생의 사회진출과 식민지 엘리트로서의 위상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주로 조선공업협회에서 조사한 전문기술가 리스트를 출신학교별, 지역별, 전공별로 분석하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일제강점기 전문기술가들의 존재형태를 파악할 수 있고, 해방 이후 단절성과 연속성을 알 수 있다. 유학생들은 도쿄,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에 있는 약 38개 대학에서 전문 기술을 수학하였다. 이들은 총독부와 지방행정청에 가장 많이 취직했고, 군수공장이나 중등학교 교사로 진출하였다. 그것은 당시 미나미 총독이 대륙병참기지화 정책을 취하면서 공업과 광업 분야에 많은 공무원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관공서, 교육기관, 민간기관에 취직하였으나. 일부를 제외하고는 식민지 2등 민족이라는 이유로 높은 직책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선진 문물을 배운 유학생들은 식민지 앨리트로서 해야 할 역할인 교육체계를 구축하거나 전문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국의 중견관리자나 하급기술자 역할에 머물고 말았다. 하부 지식계층으로서 위상을 만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본과 조선의 종속적 기술 시스템 때문이었다. 즉, 일본 본토에서 생산기구나 생산수단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식민지 조선에는 그 기계를 이입하여 운용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므로 유학생들은 기초 학문분야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하급 기술을 배워 총독부 체제를 지지하였기 때문에 사회체제의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힘든 식민지적 구조가 형성되었다. 식민지 앨리트들에게 해방이라는 역사적 조건은 일본인 자리를 대신하여 전문 엘리트 집단으로서 새로운 국가 건설의 기초 토대를 만드는 기회로 다가왔다. 미소군정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지만, 유학생들은 조선학술원과 서울대학, 김일성대학을 건립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듯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이 차지하던 중추적인 역할을 해방 후에는 한국인이 대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역설적으로 일제 강점기 식민지 앨리트들은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으며,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문과학기술과 배제된 지식인 계층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57)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