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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0호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55 - 29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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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들어와 점차 僧匠의 활동이 줄어든 반면 보다 세분화되기 시작한 私匠들이 지역별로 활발한 鑄鐘活動에 참여하게 되었다. 金成元을 중심으로 한 金氏 일파와 尹尙伯, 尹宗佰, 尹就殷, 尹就三, 尹光衡으로 이어지는 尹氏 일파가 대표적이며 18세기 중엽부터 후반에는 李万乭과 그의 작품 경향은 이어받은 李萬重, 權東三의 계열과 李萬叔과 李永喜로 계승된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까지 활동했던 大邱片手 權東三, 19세기 중엽에 활동한 金鍾得·金鍾伊 형제, 林化順은 이 시기 鑄鐘 활동을 마무리한 私匠이었다. 18~19세기의 장인사회를 이끌어 나갔던 私匠들은 전 시기에 비해 여러 지역으로 나뉘어 활동을 하면서 마치 개인사업화 되는 지역적인 편중이 더욱 강해졌다. 18~19세기의 금고가 가장 많은 수가 남아있지만 주조기술이 거칠어지고 문양은 단순화되거나 ‘옴’자 한자의 범자문으로 축소되었다. 범종의 장인이 금고를 함께 만든 예가 다수 확인되어 문양의 전승이나 기술적 공유부분에 대한 새로운 주목이 필요하다. 남해 龍門寺 운판(1760)은 火焰光背形이라는 한국적 운판 형태로 정착된 18세기의 편년 자료이다. 이는 泉隱寺 운판을 거치며 興國寺 운판(1898)을 통해 19세기에 들어와 渦雲形으로 변모된 양상을 살필 수 있었다향로는 철제에 은입사된 浮石寺銘 향완(1739)과 직지사 철제정형 향로(1750)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 부석사 향로의 제작자인 李弘成이 관청 소속 입사장이란 점과 직지사 철제향로의 연당초문과 운룡문 표현을 통해 당시의 철제 입사공예품의 기술적 수준과 위상이 높았음을 증명해 준다. 이 시기 사리장엄구는 淨巖寺 水瑪瑙塔 발견된 일괄유물이 거의 유일하며 승탑의 사리 장엄구가 주로 남아있다. 조선후기 18~19세기의 불교공예품은 근대까지 계속 사용된 점에서 가장 많은 수가 남아있으나 梵音具를 제외하고 供養具와 儀式具의 제작이 크게 감소한 점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 불교목공예품 가운데 佛·殿牌를 포함하여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佛輦과 佛卓, 그리고 疏臺 등이 꽤 많은 수가 확인되어 이들에 대한 보다 세밀한 조사와 연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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