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2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7 - 92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한국 근대기 범종은 급변하는 시대상황의 영향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개항과 함께 시작된 일본불교의 침투 속에서 유입된 일본 범종의 영향으로 현존하는 근대 범종 수의 대부분을 외래형 범종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와 일본불교의 포교활동에 위기의식을 느낀 한국불교가 전국적으로 포교활동을 시작하면서 1930년대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20여구의 전통형 범종 제작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1890년대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일본 범종은 일본 불교의 포교활동이 성행하면서 점점 더 많은 양이 유입되기 시작하였고, 점차 수요가 늘어나면서 국내장인들에 의해서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국내장인들의 손을 거치면서 외래형 범종 양식에 조선시대 종에서 보이는 보살입상과 9개의 연뢰를 표현하는 혼합형 범종이 탄생하게 된다. 따라서 근대기 초기에는 외래형이 주류를 이루고 중기에는 전통형이 제작되며, 후기에는 혼합형으로 변화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대기 범종은 제작기법에서도 전통형과 외래형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시기에 전통형 범종을 제작한 대표 주종장인으로 김치운을 들 수 있는데, 金致云은 1916년 <雙溪寺銘 梵鍾>의 중수작업부터 명문에 이름이 보이기 시작하며, 이후 <大乘寺銘 梵鍾>(1929년)부터는 직접 주종작업을 시작한다. 이후 김치운은 조선시대 범종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구축하며 1940년대 말까지 다수의 작품을 남긴다. 근대기 범종을 고찰 해 본 결과 19세기 이후 단절되었을 것으로 여겨졌던 전통주조기술은 근대기에도 일부 장인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외래형과 혼합형 범종을 통해 근⋅현대를 거치며 한국 범종 제작기술이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4)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