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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7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27 - 15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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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과 문양에서 빠른 변화를 보이는 주기류를 중심으로 조선초 자기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조선초 자기는 명대 청화백자뿐만 아니라 금은기나 북방 자기의 영향도 보이고 있어서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당시 명과 조선의 관계에서 명조는 조선을 번국(藩國)으로 인식하였으며, 조선도 임금이 스스로 번왕이라고 지칭하거나 각종 의례에서《번왕의주(藩王儀註)》의 법도와 격식을 따르고 있었다. 따라서 1450년 이전에 명조에서 조선 왕실에 하사한 자기는 명조의 번왕들에게 하사했던 자기와 유사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명조 번왕이었던 안숙왕(安肅王 ?~1526), 양장왕(梁庄王, 1411~1441), 영혜왕(寧惠王, ?~1437) 무덤에서 출토된 일부 기명과 조선 15·16세기경에제작된 청화백자가 문양 형태와 구성에서 공통되는 점이 있었다. 조선초 청화백자 전접시의 굽바닥에 시문되는 문양이 장전불교에서 사용하는 칠진보(七珍寶)의 상징 부호나 잡보문(雜寶紋)과관련되는 것이었다. 또한 조선초 주기 중에 손잡이와 출수구가 달린 주자나 쌍이잔 등은 명초 금속기의 영향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초에 동북면 일대에 거주하던 야인들의 기명이 조선 초기에 제작되는 자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다소 생소한 관점이다. 그러나 자라병의 경우에 조선초에 갑자기 제작되기 시작한다는점에 주목하였다. 자라병이 중국에서 많이 제작되는 시기는 요, 서하, 금, 원이며, 주로 중국 북방지역에서 출토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동북면 지역에서 오랫동안 세거(世居)한 이성계 집안의특수성과 건국 과정에서 다수의 여진인들이 개국공신에 책봉되고 조선인으로 귀화하는 상황과 관련될 것으로 추정하였다. 결국 여진인들이 주로 사용하던 자라병이 조선초기의 상감분청사기나상감백자 등의 고급 자기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동북면에 할거하던 야인 추장의 이름이 분청사기에 상감되는 등의 현상을 볼 때, 조선초에 제작되는 자기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특수성을 고려한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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