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44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49 - 181 (33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토함산 석굴의 전실(前室)과 본실(本室)을 연결하는 연도(羨道) 입구에 배치된 금강역사의 도상적 연원을 고찰한 것으로, 특히 한쌍으로 표현되고 금강저를 들지 않은 권법(拳法) 자세의 도상 파악에 주안점을 두었다. 우리나라에서 금강역사상은 삼국시대 분황사 모전석탑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통일신라시대 부터는 석탑·사리기·토함산 석굴 등 불교미술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시대에 까지 이어지는 데, 조선후기에는 사찰입구의 금강문과 명부전에도 배치되기에 이른다. 이 때의 금강역사의 역할은 석가모니불을 호위(護衛)하거나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하는 것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금강역사에 대하여 크게 세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첫째, 금강역사에 대한 다양한 명칭과 역할에 대해 고찰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금강역사의 역할이 붓다의 호위자에서 도량신(道場神)으로 확대되어 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금강역사의 도상에 관한 고찰로 금강역사의 지물(持物)인 금강저(金剛杵)의 특징 및 금강역사의 수(數)의 변화에 주목하였다. 셋째, 토함산 석굴의 금강역사의 배치와 도상에 대한 해석으로, 이 금강역사 도상은 634년에 조성된 분황사 모전탑의 금강역사상을 모델로 하고 있다고 추정하였다. 분황사 모전석탑의 금강역사상은 우락부락한 얼굴 표정을 하고 있으며, 입을 벌리고 있는 상(像)과 입을 다물고 있는 상(像)이 쌍으로 배치되어 있고, 지물인 금강저를 들고 있지 않다. 이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경에 나타난 중국의 금강역사 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토함산 석굴에 나타난 신장상들의 배치법(팔부중, 금강역사, 사천왕, 제석천·범천 순)과 가장 유사한 예는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의 부조상이다. 토함산 석굴의 금강저를 들고 있지 않은 권법(拳法)자세의 금강역사 도상은 화엄사 4사자삼층석탑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화엄사 4사자석탑에서는 1명은 권법 자세, 1명은 금강저를 들고 있는데, 권법 자세를 취한 금강역사가 제석천과 함께 배치된 경우에는 제석천이 금강저를 들고 있기 때문에 금강역사는 금강저 대신 권법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44)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