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36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317 - 345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조선시대 전기까지의 불교공예품은 왕실 발원의 예가 많고 그 크기도 고려시대에 비해 대형화된 것은 당시 왕권의 확립 과정에서 등장된 기념비적 성격을 지닌다. 특히 조선 왕실 발원 범종의 명문에는 최상위 계층의 發願者와 監督者, 각 분야의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제작자들이 분업화하여 종을 제작함으로써 고려 후기 범종에 보였던 중국종의 모방 차원에서 벗어나 조선시대적 범종으로 확립시켜 나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16세기 중반 이후 왕실 발원 범종이 점차 사라지면서 민간과 절 발원의 범종 제작이 주류를 이루고 제작자도 官匠에서 점차 개인적인 私匠과 僧匠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되면서 전통 방식을 따른 범종의 제작이 늘어나게 되었다. 조선 전기의 사리장엄구는 고려에 비해 사리 장엄 방식이 단순해지고 사리기의 종류와 양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왕실 발원의 사리기는 예가 많지 않지만 아직 그 제작 기술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 작품을 통해 사리 장엄의 전통이 꾸준히 계승되어온 점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의 향완은 고려시대 후기의 예들보다 둔중해지고 대부가 과장되며 梵字가 작게 축소된 도식화의 경향과 범자문의 내용에 새로운 변화가 보인다. 향완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은입사라는 기술과 고가의 재료라는 점에서 제약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비록 한 점씩에 불과하지만 명문 있는 바라와 금강령을 통해 당시 지방 사찰에까지 미친 왕실 발원의 불사를 밝혀볼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기록으로나마 왕실 원찰에 사용된 燈籠, 幡蓋, 私幡 등과 같은 다양한 장엄구가 제작된 것과 조선시대의 金字經에 대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전기의 불교공예는 비록 왕실 발원이란 한정된 계층과 작품의 다양성 면에서 고려 전기에 비해 풍부하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최고의 전문가 집단을 동원하여 침체된 고려 후기 불교공예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넣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몽고의 침입과 항쟁, 원나라의 지배하인 13세기 중엽 이후 오랜 기간 그 맥이 끊어졌던 한국 불교공예의 전통은 이러한 조선 전기 활발한 주조 활동을 통해 다시금 그 전통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조선후기 한국 전통형 종이 다시 부활될 수 있는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6)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