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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3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9 - 11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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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조는 3·1운동 때 기독교 목사로서 민족대표로 참가한 인물이다. 그는 일찍이 근대교육에 참가하는 한편, 1909년 서북학회와 대한협회 구성군지회를 조직하고 이끌어 나가는 등 계몽운동을 펼쳤다. 이 무렵 기독교를 수용하고 이후 평북 의주 일원 교회를 담임하였다. 1919년 2월 그는 이승훈의 주도 하에 유여대·양전백 등 평북노회 소속 목사들과 민족대표로 동참하였다. 그러나 3월 1일 거행된 민족대표의 독립선언식에는 불참석하고, 의주의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가하였다. 곧 그는 민족대표로서는 유일하게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3·1운동과 임시정부의 가교 역할을 한 인물이다. 1919년 4월 22일 임시의정원에 선출되어 활동하던 그는 이듬해 3월 25일 사임하였다. 그는 여전히 한인사회의 지도자이자 목사로서 한인교회를 이끌었고, 1923년 국민대표회의 때에는 비서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923년 4월 만주로 건너가 한인교회를 관장하는 한편, 통의부와 참의부 고문으로 추대되는 등 무장투쟁단체와도 연계하였다. 1933년 귀국한 그는 고향과 인근 지역에서 목회활동을 하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는 1919년 『한일관계사료집』 편찬에 참여하여 제4편 독립운동사 분야의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하였다. 1921년 3월에는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을 저술하여 편찬하였다. 본서는 김병조 개인 차원의 저술이라기보다는 임시정부가 『한일관계사료집』의 연장선상에서 후속사업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김병조는 ‘일제에 유린된 전말을 모아 열국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던 차에 본서를 통해 그 희망을 이루고자 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은 1894년의 청일전쟁부터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행사까지 격랑의 27년 민족사를 17장으로 구성하였다. 일제 침략의 본격적 시발점을 청일전쟁으로 본 것은 그의 독특한 사관이다. 그는 3·1운동을 ‘모범적 혁명’, ‘개국 이래 처음 일어난 민족적 혁명’으로 인식하고, 참여 군중을 ‘義軍’이라 표현하였는데, 민족대표로서 3·1운동을 기록해야 하겠다는 책임감과 절실함으로 본서를 정리하였다. 그런데 본서는 본격적이고 주관적인 3·1운동사의 서술이라기보다는 자료집의 성격으로 이해된다. 요컨대,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은 김병조의 민족대표로서의 위치, 『한일관계사료집』 편찬과정에서의 역할, 임시정부 후속사업의 성격 등을 감안할 때, 『한일관계사료집』·『한국독립운동지혈사』와 함께 3·1운동사 연구의 3대 古典으로 평가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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