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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성표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8집
발행연도
2019.11
수록면
187 - 224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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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전문학교는 기독교 신앙을 우선시했던 평양지역 장로교 선교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정신에 근거한 조선 민족의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언더우드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세속적인 교육기관이었다. 연전의 학생들은 1915년 설립된 기독학생청년회를 중심으로, 1919년 3·1운동과 1920년 5월 문화주의의 영향을 받아 출범한 조선학생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학생 민족운동에 앞장섰다. 사회주의 및 사회주의자들의 반기독교운동에 직접 영향을 받기 시작한 연전의 학생들은, 1923년 2월 효과적인 학생 민족운동의 실천을 위해 기존의 기독학생청년회와는 별도로 학생회를 설립하였다. 연전의 학생들은 학생회를 중심으로 1920~30년대 대표적인 사회주의 계열의 학생운동단체인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와 함께 1926년 6·10만세운동에 앞장섰던 학생회는 1926년 11월 ‘학생 공산주의 운동에 진출하여 교기(校紀)를 문란’시켰다는 이유로 활동을 정지당하는 등 탄압을 받았으며, 결국 1932년 1월 ‘사상단체와 연락, 학생 공산주의운동 단체화’했다는 이유로 해산되었다. 학생회가 해산된 이후 학생들은 효율적인 학생 민족운동의 전개를 위해 상과의 학생자치단체인 경제연구회를 중심으로 학생회 재건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으나, 학생회의 부활 움직임을 주목하고 감시하던 일제의 탄압으로 무산되었다.
연전의 학생운동은 ‘민족의 독립과 민중의 해방’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해, 학교의 교육 방침이었던 기독교주의와 당시 민족해방의 수단으로 널리 받아들여진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으며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먼저 기독교주의를 민족운동의 목적달성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판단하고 이에 근거한 민족운동의 실천에 나섰으나, 조선의 기독교가 시대와 민족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하면서 사회주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학교 당국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입장에서 학문으로서 사회주의 연구를 허용했으나, 학생들은 민족운동의 실천에 사회주의가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 전도나 기독교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었기 때문이다. 연전 학생회가 주도했던 1926년 6·10만세운동 등 연전 학생들의 민족운동은 기존에 알려진 기독교사회주의와는 또 다른 성격의 것으로, 일제강점기에 기독교와 사회주의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공존·협력하였던 사례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목차

1. 머리말
2. 연희전문 학생회 창립과 기독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
3. 연희전문 학생회와 6·10만세 운동
4. 사회주의 사상의 수용과 학생운동의 탄압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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