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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노혜경 (호서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1輯
발행연도
2020.4
수록면
141 - 171 (31page)
DOI
10.31335/HPTS.2020.04.7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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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당상은 1752년(영조 28) 공시인에 대한 침탈을 막고 공시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공시인을 관할하는 선혜청, 호조, 평시서등의 관서가 있었음에도 이들을 묶어서 공시인을 보호하라는 특정 임무를 전담하는 최고 상위 기구라는 점에서 새로운 성격의 당상이었다.
대동법 이후 전국적으로 장시가 발생하고, 화폐가 통용되면서 국가가 유통을 장악하는 재분배 체제에 위기가 닥쳤다. 18세기 도성에서는 난전문제가 발생했다. 전통적인 공시인의 국역부담이 커졌고, 왕실, 군문, 권세가로부터의 침탈도 심해졌다. 정부는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공물체계 또한 흔들렸다. 공시인을 비롯하여 난전, 사상 집단이 실제로는 권력층과 각층의 관서와 기구들과 복잡하게 관계가 얽혀 있어서 더욱 문제가 복잡했다. 이 시기 조선의 사회변화 상황은 비변사와 같은 상위의 권력기구의 지원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에서 찾아낸 방법이 비변사당상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공시인에 대한 문제는 공물체계와 상품유통구조 등 조선의 경제, 재정구조 전반에 걸친 복잡한 문제였다. 비변사의 처결과 역할은 조정과 조선정부의 근간에 흐르는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공시당상의 설치와 활동임무는 조선후기 이정책의 일환이었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새 법과 제도를 수립하기 보다는 행정기관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공시인 문제를 대증요법으로 시행하는 것이었다. 변화의 본질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행정력으로 보완하려고 했지만 그 행정력이 제대도 작동되지 않아서, 더 강력한 권력으로 접근한 것이 비변사 당상체제였고, 최종적인 형태가 공시 당상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공시당상의 출현과 성격
Ⅲ. 공시당상의 활동방식
Ⅳ. 비변사의 공시인 이정행정의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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