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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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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선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0집
발행연도
2020.5
수록면
95 - 138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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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의 조직과 활동을 파악하는 데 있다. 유학생 총회는 1920년대부터 총독부 여권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간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선교사의 후원으로 학교에 진학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유학생총회원들은 미국 동부지역, 중서부지역, 서부지역에 분포하며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그 인맥은 기호·교민단, 서북·흥사단 계열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유학생총회의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출판사업, 연례집회 개최를 통한 친목 도모와 주요 문제 토의를 들 수 있다. 출판사업은 국내를 대상으로 한 『우라키』와 미국 사회를 대상으로 발간한 The Korean Student Bulletin(한인학생회보)가 있다. 잡지 발간은 유학생들 간의 친목, 지덕의 개발, 학술의 권장 및 선전사업 등의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연례집회는 만찬회, 예배, 야유회, 사교회, 토의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는 친목 도모와 지식 교환의 장이었다.
특히 1920~1930년대 활동한 유학생총회원들은 국내외 민족운동의 흐름 및 해방 이후 정계 진출과 연동되어 있었다. 이러한 영향력은 이훈구, 김도연, 김양수 등과 같은 인물들을 통해 나타났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국가건설 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유학 출신 지식인 집단들은 일제강점기 미국의 자본주의와 경제대공황을 직접 경험하며 유학생총회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엘리트 집단 형성과정의 출발이 바로 유학생총회였던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의 조직과 구성원
3. 북미대한인유학생총회의 활동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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