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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몽골학회 몽골학 몽골학 제6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3 - 9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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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탐라국(耽羅國) 항파두리성(缸波頭里城)에 관한 견해는 몇 가지가 있어오지만, 이를 재론하기보다는 여기서는 당시의 주된 역사적인 상황을 되짚어가며 그 실상을 되새겨보는 데에 주력하려 한다. 이 성은 대체로 팍스 몽골리카의 극성기인 1273~1374년 경에 현존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크게는 스텝 몽골유목세계제국의 해양세력 확보와 직관되는 존재 목적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평양 탐라국 항파두리성의 초대 성장(城將)은 스텝 몽골유목세계제국 ‘정동(征東) 도원수’인 칭기스칸의 충직한 이부·동모·동성·말제(異父·同母·同姓·‘末弟’) Borǰigin Temüge Odčigin의 6세손인 황족 힌두(Borǰigin Hindu: 忻都 또는 忽敦)이었다가 그가 어떤 사정으로 거세되고 1277년부터 고려계 몽골인 홍복원(洪福源)의 아들 홍다구(洪茶丘) 일가가 그 자리를 점유하면서 홍바타르성(洪baatar城: 洪拔都‘Batu’城)으로 성명(城名)이 정착되었을 수 있다고 추정된다. 홍다구의 뒤를 이은 성장이 그의 조카 스텝 몽골유목세계제국 정동 도원수 홍파두아(洪波豆兒: Hong Baatar-洪拔都‘Hong Batu’:홍영웅, 장군)로 명명되고 있어서 그럴 가능성을 보여준다. 당해(當該) 출처 사료들이 모두 고려측 사료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반군(叛軍) 삼별초(三別抄)가 몽·려 연합군에게 멸절된 후의 스텝 몽골유목세계제국 ‘정동(征東) 도원수로 명명(命名)·기록되고, 세습되는 그들 홍(洪)씨일가 성장(城將)이 Hong Baatar(洪波豆兒: 洪拔都‘Hong Batu’)로 불리는 것은 대체로 무난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쿠빌라이 대칸의 쿠데타는 이로부터 완성돼 팍스 몽골라카를 구가했으나 동시에 몽골세계제국이 내외로 붕괴되는 치명적인 불씨를 심은 것도 사실이라 하겠다. 다만 해양 몽골세계제국화 중심기지 태평양 탐라국 항파두리성-홍발도성(洪拔都‘Batu’城)의 해양사 상 최첨단의 최대 태평양세계대전을 시도한 결과가 조선조의 거북선(龜船; 1413년)으로 결실됐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보여주는 것으로 보이는 유물들이 관계 해전유적일대에서 근래에 발굴되고 있는 일이 주목된다. 쿠빌라이 대칸 휘하 최고위 인물중의 일인이었다 할 스텝 몽골유목세계제국 ‘정동 도원수’ 홍다구 바투(洪茶丘 拔都)는 1274년 쿠빌라이 대칸의 칙명(勅命)으로 정일(征日) 감독조선관군민총관(監督造船官軍民摠管)을 직접 맡아 정일조선공사(征日造船工事)를 몸소 총주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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