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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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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세계지역학회 세계지역연구논총 세계지역연구논총 제38권 제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49 - 7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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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소련에서 북한유학생들이 집단 망명한 사건에 대해서는 그동안 언론 보도를중심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왔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증언과 기억, 그리고 개인적인기록들에만 의존 한 것이어서, 보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구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북한유학생 허웅배의 당시 서한은 이 사건에 대한 보다 실증적인 연구의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서한과 그의 회고록을 교차 확인하면서 한편으로 관계자들의 증언들을 통해 당시 사건의 역사적 정치적함의를 짚어 본 점이 이 논문의 의의다. 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김일성은 이 사건 이후로 소련 간섭 없이 자국 내 내부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북한의 공인된 역사에서 종파투쟁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김일성 권력 강화 과정은 이 시기를 전후로 본격화 되었다고 판단된다. 둘째, 이 사건은북한 인민들에 대한 행동과 사상 통제를 더욱 강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셋째, 이로부터 북한 사회는 더욱 더 외부세계와 단절되는 폐쇄사회로의 성격이 강화된다. 넷째, 1958년 북한유학생들의 망명사건은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에서 일어 난 북한 최초의 정치적 집단 망명이었다. 다섯 째, 당시 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북한의 정치적 상황에 비추어 지금도 유효하다. 여섯째, 당시 소련의 “해빙” 상황은 동구 여러 나라들에 영향을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당시 모택동의 중국이나 김일성의 북한에서는 이러한 해빙기의 분위기가 곧 사라진 것은 추후 연구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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