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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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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고전여성문학회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73 - 199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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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재(金浩然齎, 1681〜1772)는 사대부 출신 여성 시인이다. 충청도 갈뫼(鼇頭)에 정착한 안동 김씨인 김성달(金成達)의 딸로 태어나 성장하여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후손 송요화(宋堯和)와 혼인하였다. 42세로 사망할 때까지 가문의 살림을 주관하면서 근 200편의 한시를 남겼다. 한시 원문은 실전되었으나 한글본으로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지다가 증손부 청송 심씨(靑松沈氏, 1747〜1814)가 직접 정서하여 깨끗이 보존될 수 있었다. 김호연재의 남편 송요화는 혼인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 안정나씨를 모시고 지방관인 형 송요경의 임지를 따라 다녔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생활한 기간은 길지 않았다. 직계 어른의 통제 없이 송촌(宋村)에서 호연재는 젊은 나이에 가문의 살림을 꾸려나가면서 엄격한 규범의 화신이 되어야 했지만 역설적으로는 시를 지으며 군자 의식을 가다듬을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호연재는 시숙부 송병익(宋秉翼)을 시어른으로 의지하면서 시당질 사흠(士欽), 진흠(晉欽), 명흠(明欽)등에게 글스승이 되었다. 혼인 직후 호연재 부부가 신혼을 보냈던 법천정사는 바로 송촌의 뒤켠에 있었다. 일상시가 곧 산수시가 될 수 있는 환경이다. 송촌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호연재는 가고 싶을 때마다 가까운 비래암과 법천의 산수 속에서 휴식하며 문학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법도상 사대부가의 여성은 일가친척 외의 남성과 폭넓게 교유할 수 없었으며, 외부인과 주고받는 편지에도 한글을 사용해야 했다. 실제 호연재의 차운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일가친척 남성들이었다. 그 결과, 호연재는 그의 시문학 속에서 호탕하지만 유폐된 군자상을 조성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 고립 속에서 호연재는 시에 복잡한 전고나 현학적 표현을 넣지 않고 내면의 솔직한 감상을 담을 수 있었다. 호연재는 고독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를 규방에 갇힌 군자라 일컬으며 호탕한 성품으로 자찬하였다. 송촌 근처 법천과 비래암을 읊은 산수시 뿐만 아니라 화양구곡과 단양에 다녀간 작품에서 그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송촌을 대대로 지켰던 여성 후손들은 호연재의 작품에 공감하였고, 증손부 청송 심씨는 원고를 정서하여 보존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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