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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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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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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49호
발행연도
2020.8
수록면
207 - 24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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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첫째, 『삼국사기』 권37 지리지 말미에 수록된 도독부 이하 목록의 시점과 성격을 구명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669년 2월 당의 고구려 고지 재편 관련 내용과 압록수 이북의 고구려 성 현황 목록을 함께 검토했다. 자료 간의 유기성 및 『삼국사기』 편찬자의 판단을 고려했을 때, 도독부 목록은 당의 고구려·백제 고지 재편 상황과 관련된 669년 무렵의 자료인 것으로 이해했다.
둘째, 「답설인귀서」에서 670년 김흠순이 가져온 지도에 주목했다. 김흠순의 지도는 당이 일방적으로 기획한 백제 고지 재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따라서 시점상으로 김흠순이 가져온 지도는 도독부 목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판단했다. 한편 「답설인귀서」에서 문무왕은 김흠순의 지도에 담긴 당의 처사에 대해 “三四年間一與一奪”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도독부 목록이 665년 취리산회맹의 정계 내용과도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중국의 자료에 나타난 백제 고지 지배 체제 관련 기록을 검토했다. 중국의 자료에서는 5도독부 체제 이후 웅진도독부 단일체제로 재편된 공식적인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5도독부의 폐지 시점과 신라가 백제 고지를 장악해나가는 시점이 중국의 자료에는 모두 666년으로 기록된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664년과 665년의 회맹 이후에도 웅진도독부의 지배 체제가 원활하지 못했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했다.
넷째, 백제 고지에서 활동한 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웅진도독부 지배 체제의 한계를 살폈다. 유인궤는 전후 백제 고지를 수습함으로써 당의 지배력을 회복하는데 일부 기여했으나, 그의 활동이 백제 고지 전체에 영향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밖에 백제고지에서 활동한 인물들은 대체로 웅진도독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반면, 7주에서 활동한 인물들은 당시 상황과 불일치하거나 역임 시기가 불분명하여 현재로서는 웅진도독부의 실제 지배 범위를 설명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670년 신라가 안승과 고구려 유민집단을 금마저에 정착시킨 사실에 주목했다. 신라의 조치는 백제 고지에 대한 웅진도독부 지배 체제의 한계와 신라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는 동시에 김흠순의 지도와 도독부 목록에 반영된 당의 계획이 수립된 배경과도 공명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도독부 목록의 시점과 성격
Ⅲ. 웅진도독부의 백제 고지 지배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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