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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숙희 (문화재청)
저널정보
한국중세고고학회 한국중세고고학 한국중세고고학 제8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5 - 4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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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하남시 천왕사지 철불좌상은 9세기 이후에 출현하는 철불 중에서 최대 규모의 고려 초기 불상으로 주목되어 왔다. 불상 높이가 3m에 가깝고 무게는 6.2톤에 이른다. 원래 경기도 하남시 하사창동의 절터에 방치되어 있었던 것을 1911년에 이왕가박물관으로 옮겨왔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남 천왕사지 철불은 선종 사찰인 천왕사에 봉안된 주존불로 8세기 중엽의 경주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따르면서 양식상 고려 전반에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철불 조성의 후원세력에 대해서는 하남지역의 대표적인 지방호족인 왕규의 조성설이 일반적이었지만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불교정책과 함께 지방호족의 후원 및 선종의 교리적 측면에서의 변화에 의해 대형의 철조석가불상이 조성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도상적인 측면에서 하남 천왕사 철불이 고려 초기의 선종과의 연관성 속에서 지권인의 비로자나 불상이 아니라 전통 불상양식인 항마촉지인의 석가불상으로 형상화된 것은 고려 태조의 불교정책과 불교신앙의 시대적 추이를 반영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논지에 의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조성에는 선종과의 관련성이나 선승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으며 지방호족 왕규는 불상 조성과 관련된 일을 주관했으나 실제 단월이었던 고려 태조가 왕권 강화정책의 하나로 기념비적인 거불이 조성되었다는 추론이 가능하였다. 천왕사 철불의 조성시기 또한 석굴암 본존불 형식을 계승한 통일신라 후기의 불상과 양평 사나사 철불, 임실 중기사 철불과 같은 고려 전반의 불상을 양식적으로 연결시켜 비교, 고찰하는 한편 924년 천왕사에 잠시 머물렀던 원종대사 찬유와는 관련성이 적다는 점을 근거로 고려 전반인 930-940년경으로 추정하였다.
고려 전반은 태조 왕건의 후원 아래 지방호족과 선승들에 의해 선종과 그 교법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교종을 수용하여 교선융합사상으로 발전했던 때이다. 이 시기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선종사찰에 주로 봉안되었던 철조의 비로자나불상 또는 노사나불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하남지역을 비롯한 남한강 일대에서 고려 전기의 항마촉지인 철불이 다수 조성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선종과 교종이 융합되는 불교의 시대적 흐름에 따라 불상의 도상도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으로 보았다. 더욱이 하남 천왕사지 철불이 양식적 면에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굴암 본존불상을 재현했다는 것은 지방호족들의 세력을 연합하고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던 고려 태조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3m에 가까운 대형의 철불로서 장대하고 위엄있는 조형감을 강조한 것 역시 철이 가진 투박하고 강인한 특성을 이용하여 고려 왕권의 강력한 이미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하남 천왕사지 철불의 가장 큰 특성과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철불 연구의 쟁점과 문제
Ⅲ.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출현과 조성배경
Ⅳ. 하남 천왕사지 철불좌상의 도상과 존명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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