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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張元燮 (경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51호
발행연도
2021.4
수록면
235 - 25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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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大王陵碑에는 ‘倭’ 字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데 연구자마다 집계하는 숫자에 차이가 있고, 碑文에 담긴 ‘倭’의 실체를 놓고도 논란이 계속되어 왔다. 그 이유는 연구자마다 비문의 글자를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예단하거나 인용하는 글자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중국의 中原에서 전쟁이 일어나거나 기근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대규모로 무리를 지어 東北地方과 한반도, 日本列島로 옮겨갔다. 반대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는 중국의 동북지방과 중원으로 옮겨갔고, 또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사이에 서로 교차하여 옮겨가기도 하였다. 이런 정황은 史書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실이기도 하고, 오늘날 고고학적 발굴과 역사연구소에 의해 증명되기도 한다. 실제로, 고대 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사람들과 族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방향으로 이동해 왔으며, 이런 현상은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야 점차 사라졌다.
이런 형태의 이동은 거의 대부분 공식적인 배경도 없는 데다가 정치, 군사적 목적도 없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순간에 패배자로 전락하였고 그로 인하여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완전히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가야 하는 일종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비록 이와 같았을지라도, 그들이 이주해 간 지역의 원주민 삶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음은 분명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碑文에 보이는 ‘倭’가 여러 차례에 걸쳐 廣開土大王으로부터 征伐과 追放을 당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일이다.
비문에 실린 ‘倭’는 일본열도에서 통일된 大和政權이 한반도로 보낸 일정한 규모를 갖춘 군대도 아니었고 해적도 아닌 단순한 일련의 이주자들이었다. 이들은 일본열도의 여러 소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던 내부의 분쟁과 소국 사이의 겸병을 위한 전쟁 과정에서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패배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삶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할 수 없이 한반도로 옮겨가야 했다.
비문에 나오는 ‘倭’는 곧 이런 형태의 이주자들이었고 그들이 한반도로 향했을 때, 對馬島는 중간을 경유하는 정거장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碑文의 ‘倭’와 연구 관점
Ⅲ. 碑文의 ‘倭’ 실체 再考
Ⅳ.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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