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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숙경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효원사학회 역사와 세계 역사와 세계 제59집
발행연도
2021.6
수록면
207 - 257 (51page)
DOI
10.17857/hw.2021.6.59.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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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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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 천주교도 장살사건’은 같은 해 尹有一, 崔仁吉, 池璜 3인이 포도청에서 체포되어 杖殺된 사건을 말한다. 3인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周文謨(야고보)를 입국시키는 데 중심역할을 하였던 인물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입국한 주문모를 통해 조선 천주교회는 로마 가톨릭의 제도 교회와 연결되는 ‘보편 교회의 방식’을 경험하게 되었다. 따라서 1795년은 한국 천주교사에서 전환점이 된 해이다.
중국에서 외국인 신부가 들어왔다는 것이 한영익의 밀고로 조정에 알려져, 정조는 주문모를 체포할 것을 명령하였다. 주문모는 달아나고, 그를 대신해 3인이 포도청에 체포되어 바로 다음 날 모두 장살되었다. 천주교도 처리에서 사건 당사자 모두가 어떠한 심문기록 없이 하루 만에 처형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두 달 뒤 권유의 상소를 통해 사건은 처음으로 공론화되었다. 노론 측은 정조의 측근인 이가환이 천주교도의 우두머리이고, 채제공이 문제를 은폐하였다고 주장하였다. 1795년 천주교도 장살사건은 이제 정치적 문제로 비화해 정국에 영향을 미쳤다. 정조는 1795년 사건을 서둘러 수습하였으나, 정조 사후 남인들이 대거 축출되는 1801년 신유박해의 서막이 이때 열린 것이다.
1795년 천주교도 장살사건은 3인의 죽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3인의 천주교회 내 활동을 통해 한국 천주교의 성립과 확산을 알 수 있고, 정치적 영향을 통해 1795년 정국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1795년 사건은 종교적 외피를 두른 정치적 사건이자, 천주교의 내적 변화를 담아내고 표현한 종교적 사건이다. 이러한 다면적, 복합적 성격을 가진 것이 1795년 사건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1795년 사건에 관한 기록 검토
Ⅲ. 윤유일·최인길·지황의 활동
Ⅳ. 사건의 영향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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