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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선영 (동국대학교) 임영애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42號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203 - 229 (27page)
DOI
10.14769/jkaahe.2021.08.4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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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東 鳳凰寺 大雄殿 三世佛坐像과 三殿牌는 조각승 端應이 제작하였다. 삼존은 지금까지 목조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19년 좌우 협시불 개금불사 과정에서 좌우 협시불은 소조상임이 밝혀졌다. 또한 협시불 대좌에서 묵서가 발견돼, 협시불 대좌는 불상이 제작된 지 2년 뒤인 1694년에 만들어졌음을 확인했다. 본 논문은 불상의 재료와 대좌의 제작 시기가 다른 이유를 추정해, 안동 봉황사 삼세불좌상 및 삼전패가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본 글이다.
안동 봉황사의 원 사찰명은 황산사인데,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 중창되면서 사찰명을 봉황사로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명을 바꾼 이후에도 황산사와 봉황사는 함께 사용되었으며, 재건 당시 경비와 자재 조달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리고 삼세불좌상은 평균 156㎝의 대형 불상으로 이마에서부터 돌출된 매부리형 코, 정면에서 보일 정도로 깊게 파인 삼각와, 배에서 W형으로 늘어지는 옷주름 등 단응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도 본존불과 협시불은 이륜의 모양과 대의의 옷주름 등 세부 표현이 다른 점이 특이하다. 또 부견의와 승기지는 평면화가 진행되어 이전에 단응이 제작한 불상과 시기적인 차이를 보인다. 삼전패는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전패와 달리 소박하지만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다음으로 불상과 대좌의 묵서명을 분석해 昭影神鏡과 단응 유파는 봉황사에서 1692년에 불상 세 구와 본존불 대좌를, 1694년에 협시불 대좌와 수미단 등을 만들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17세기 후반에 강화된 정부의 松禁令, 협시불의 재료와 무게, 인근 광흥사 명부전 불사를 근거로 판단하였다. 한편 봉황사 삼세불좌상 및 삼전패 제작을 주관한 단응은 전라도 출신의 승려이지만 주로 경상북도에서 활동했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단응이 처음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1665)의 묵서명을 근거로, 〈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1649)에 단응이 관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따라서 소조사천왕상을 조성한 경험이 있는 전라도 조각승은 경상도 사찰에 초빙되었고, 경상북도에서 활동하던 소영신경과 문중을 이루어 함께 불사를 진행했다고 파악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조각승 단응은 조각 기술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문중 내에서 권위를 지니고 있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더불어 삼세불상의 재료, 불상과 대좌의 제작 시기가 다른 점은 조선후기 사찰 중수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안동 봉황사의 내력
Ⅲ. 1692-1694년작 봉황사의 삼세불좌상과 삼전패
Ⅳ. 기록 분석과 조각승 단응
Ⅴ. 맺음말 : 안동 봉황사 삼세불좌상 의미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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