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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임경준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학회 중국학보 중국학보 제95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57 - 278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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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目的은 三藩의 亂 이후 淸朝가 盛京地域에 대하여 推進한 再建事業의 實像을 考察하는데 있다. 淸朝는 再建事業의 焦点을 防衛體制의 整備와 擴充에 集中하였는데, 이는 盛京地域에 駐屯하게 된 兵力의 數量的 推移로부터 確認된다. 즉 康熙年間에 盛京地域에 配置된 全體兵力 大部分이 三藩의 亂이 終結된 時點에 增員이 이뤄졌던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兵力 增員의 內實을 살펴보기 위하여 新滿洲 佐領의 編成과 移住에 注目하였다. 이를 통하여 黑龍江 一帶에 居住하던 少數民族을 戰力化한 新滿洲 佐領의 移住時期와 規模를 考證하였다. 아울러 淸朝가 三藩의 亂을 平定하는 過程에서 복속시킨 三藩 傘下의 人口를 盛京地域에 安揷시키는 政策에 관하여 注目하였다. 이를 통하여 당시 盛京에 安揷된 三藩의 人口는 驛站의 運營에 必要한 站丁으로 投入되었던 事實을 밝혔다. 그런데 이처럼 淸朝가 盛京地域에 대한 再建政策를 推進해 나감에 따라 그간 緩衝地帶로 남아있었거나 支配力이 相對的으로 微弱했던 곳까지도 行政力이 미치게 되었다. 이러한 變化는 盛京地域과 接境하는 朝鮮과의 關係에도 影響을 끼쳤다. 이후 兩國間에 벌어진 犯越 事件이 以前처럼 單純한 外交的 摩擦의 水準을 넘어 급기야 國境問題로까지 飛火하게 된 背景에는 盛京地域에 대한 淸朝의 再建政策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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