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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쫑슈민 (독립연구자)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95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5 - 6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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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8일, 일본이 진주만과 말레이반도 등지에 대해 공격을 개시한 후, 교전국 쌍방이 방첩에 근거하여 ‘적국인’을 구류하기 시작하였다. 영국령 말레이시아(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일본국민(200여 명의 타이완인 포함)들은 집합, 전전해 인도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우선 델리 부근의 고성인 푸라나 킬라(Purana Qila)에 주둔하다가 나중에 중부지방의 아지메르(Ajmer)성의 데올리(Deoli) 수용소(Japanese Internment Camp, Deoli/Ajmer)에 구류되었다. 1946년 5월이 되어서야 그곳에서 떠나 싱가포르에서 고향으로 갈 귀환선을 기다렸다. 본문은 인도수용소 내부의 생활을 다시 구성하고, 또한 교전국 쌍방의 적국인에 대한 대우를 비교하고자 한다. 양자의 관리규정 상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양식 공급의 부족, 체벌, 강제노동, 또한 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한 행위 등은 일본군이 지적된 주요 원인이었다. 이와 대조해 영국군 통제 하의 인도수용소 내부의 타이완인은 이러한 박해를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릉도원과 같은 생활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적십자회 등의 보고에서 ‘아시아식’ 등 용어를 통해 하늘 높은 곳에 있는 것 같은 서양 백인들이 동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엿볼 수 있다. 한편 전쟁 시기의 거주 제한과 생활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는 수용소 내부에서 일본인, 오키나와인과 타이완인의 식민 계층성과 경계선이 여전히 존재했다. 또한 수용소 내의 집단생활에서 충국애국(忠君愛國) 사상을 강조함으로써 원래 해외에서는 일본어와 일본식 교육을 배울 기회가 적었던 아이들이 오히려 제한된 공간 내에서 일본인이 되는 학습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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