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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순우 (군산대학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14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97 - 12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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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고려를 찾은 내투 발해인들이 고려 사회에 어떻게 정착해 나갔는지 해명되지 못한 주제를 문헌 기록과 고고학 발굴 자료를 활용하여 규명하려는 글이다. 고려 전기에 내투 발해인들이 처치(處置, 處地)됐다고 추정되는 지역을 문헌 기록과 고려-거란 전쟁간 확인되는 ‘발해항호’를 근거로 추정해보았다. 내투 발해인들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정착지가 필요했고, 고려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정착을 안정적으로 유도하면서, 정세가 불안정했던 북방에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격퇴하고 안정을 구가하기 시작한 현종대 후반부터는 발해인뿐 아니라 이종족 내투자들 모두 한반도 중부 이남에 배치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요나라 시기 유적에서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와 고려시기 유적에서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를 발해 상경성 출토 연화문 수막새와 비교, 검토하였다. 그 결과 「안양사지」와 「원지동 원지(院址)」에서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가 요나라 시기의 유적에서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와 흡사하고, 발해시기 상경성에서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의 문화적 요소(모티프)를 계승하고 있음을 제시하였다. 당시 안양사가 고려 왕실과 매우 밀접했다는 사실, 원지동 원지 역시 원(院)의 시대적 성격상 고려 조정의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내투 발해인들과의 연관성을 높게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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