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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수홍 (울산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상고사학보 한국상고사학보 제110권 제11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1 - 5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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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을 검토하여 어떤 사회적 변동이 무덤문화의 변화를 이끌었는지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 전기에 무덤이 출현한다. 단순한 시신처리 결과물이 아닌 ‘기념물’로서의 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기념물로서의 무덤 축조는 지도자의 권위를 고양할 필요성이 작용하였을것이다. 무덤이 축조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안정된 ‘정착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전기에는 무덤이 1~3기씩 분포하는데 세장방형 주거 2~3동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는 것과 연동한다. 소촌과 촌이결합되어 촌락을 이루었는데, 마제석검이 부장된 무덤의 피장자가 촌장일 것이다. 후기에는 무덤이 군집하여 공동묘지화 된다. 지석묘 문화의 전성기이다. 군집하지만 수평적 층서를 나타내는 선형적 확대유형으로 분포한다. 이때부터 대규모 취락이 등장하는데 소촌, 촌, 대촌이 결합한 읍락을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불평등이 제도화되지 않은 평등사회가 유지되었다. 마을의 지도자인 족장이 등장하였는데 경남지역은 대규모 묘역식 지석묘, 대구지역은 장신검이 부장된 무덤, 울산지역은 주구묘가 족장의 무덤이다. 초기철기시대는 취락의 규모 보다는 취락간의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이 때불평등사회의 지배자인 군장이 등장하는데 1인을 위한 무덤이 축조된다. 1기만 단독으로 분포하는 거대 지석묘, 새롭게 유입된 세형동검과 동경이 부장된 목관묘가 수장의 무덤이다. 새롭게 국읍에서 주제하는 천신제사가 구릉 정상부에서 행해지는데 지석묘와 동일한 형태의 적석제단을 축조하거나 상석과 동일한 바위를 이용하였다. 공동체의 노동력보다는 개인을 위한 위세품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면서 목관묘가 빠르게확산된다. 지석묘를 축조하는 문화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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