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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양시은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상고사학보 한국상고사학보 제112권 제112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55 - 87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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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우리 학계에서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평지성과 산성을 짝으로 한 도성체제를 갖추었다’라는 통설(通說)이 자리하게 된 경위를 통사적으로 살피고, 최근의 고고학 조사 성과와 연구결과를 토대로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고구려 연구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도성제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고고학 조사가 시작된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세키노 다다시가 1914년도 사학잡지 에 평양 지역에서의 조사 경험과 주서 의 기록을 바탕으로 고구려의 평양 도성은 왕궁이 있는 평지성(안학궁)과 배후의 산성(대성산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국내 도성 역시 평지의 통구성(국내성)과 적이 쳐들어왔을 때 사용하는 산성자산성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논의의 시작이었다. 세키노의 주장은 이후 북한과 중국을 거쳐 국내 학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에서는 고구려 건국 초기부터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졸본 도성은 오녀산성과 하고성자토성, 국내 도성은 국내성과 산성자산성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견해가 통설이 되었다. 북한에서도 주서 의 기록을 근거로 대성산성과 안학궁이 전기 평양성을 구성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통설로 자리 잡았는데, 안학궁의 조성 연대에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은 계속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개별 왕성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어느 정도 진행된 지금에 와서는 기존의 통설을 뒷받침하던 근거의 상당수가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조사 내용만을 놓고본다면, 고구려의 도성이 평지성과 방어용 산성으로 구성되었다는 기존의 견해는 적어도 국내성이축조되는 4세기 이후에나 적용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전기 평양성마저도 대성산성만왕성으로 사용되었고, 평지에는 별도의 성곽이 없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이제는 고고 자료를 바탕으로 고구려 도성 구조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함께 통설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가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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