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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호광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106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253 - 28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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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남도 도청 소재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이주는 다소 늦은 1901년 시작되었다. 진주에 일본인의 정착이 늦은 이유는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진주와 인근의 지속적인 의병활동과 경부선 연선에서 크게 벗어난 교통의 오지(奧地)라는 교통 불편이 주된 이유였다. 여기에 임진왜란 2차례의 전란으로 형성된 강한 배일(排日) 정서도 한 요인으로 추측된다. 이로 인해 일본인은 이주 후에도 상당 기간 정착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진주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매립사업을 통해 거주지를 확보하고 자경단(自警團)과 일어학교 등 단체를 조직해 일본인 사회를 형성해 나갔다. 또한 1907년 진주일본인회를 조직해 교육, 의료, 위생, 소방 등 자신들의 자치와 권익을 확대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들은 진주성벽(晉州城壁)을 훼철(毁撤)하고 해자역할을 하던 대사지(大寺池)를 매립하는 토목공사를 진행하였다. 이로 인해 진주는 전통도시의 기능은 급격히 상실되고 일본인들이 주도하는 식민도시화가 급격하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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