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오대영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전북사학회 전북사학 전북사학 제61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61 - 88 (28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제 2차 일본원정이 끝난 뒤, 3차 일본원정 준비와 일본의 반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개경을 포함한 다섯 지역에 만호부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일본원정이 무산된 뒤에도 만호부는 여전히 남아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만호부의 장인 만호는 정동행성의 승상인 고려국왕이 적합한 인물을 원에 추천하여 승인을 받으면 임명하는 방식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고려국왕의 추천 없이 원의 황제가 원하는 인물을 만호로 임명하는 일이 잦았고, 거듭되는 원의 견제로 인하여 고려국왕의 보거권도 힘을 잃었다. 만호는 대부분 재추 중에서 선출되었고, 친원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들은 강력한 군사권을 바탕으로 백성을 부역에 동원하거나 토지를 침탈해 농장을 늘렸고, 왕의 허가 없이 군대를 동원하는 등 그 폐단이 컸다. 이 때문에 군의 허소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이를 타개하고자 공민왕은 즉위 5년, 정동행성이문소를 폐지하고 인사권을 손에 넣은 뒤 군사제도를 개혁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기득권의 반발과 홍건적・왜구의 침입 때문에 뜻대로 개혁을 행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여러 타개책을 내놓는데 그 중 하나가 익군이며 무사히 정착하여 고려 말 서북면 방어의 중심이 된다. 우왕대에는 공민왕대 임시직이었던 원수(元帥)가 상설직으로 바뀌면서 고려 군제도 크게 변화한다. 원수는 지휘권과 군관을 임명할 수 있는 인사권, 병사를 징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고 이를 이용해 정권을 장악한다. 하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팔도의 통수권을 완벽히 장악하자 원수제도 급격히 약화되고, 만호도 폐지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