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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경수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영산대학교 동양문화연구원 동양문화연구 동양문화연구 제30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7 - 4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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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은 언제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였는가? 그의 학문적 방향전환은 언제였는가? 이 두 가지 사실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 남명이 과거시험을 포기한 것과 평생 단 한 번도 벼슬에 나아가지 아니한 사실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남명은 30세 무렵에 학문적 전환을 하였고, 32세까지는 이미 과거를 완전히 포기하였다. 그가 과거를 포기하고 처사의 삶을 택한 배경에는 『주역』에 대한 이해가 바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주역』을 상수역이 아닌 의리역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가 남긴 글 속에서 우리는 『주역』의 13개 괘를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모두는 하나같이 출처의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내용들이다. 그의 강학장소였던 뇌룡정과 산천재는 『주역』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그 시기에 맞는 그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뇌룡정에서는 내면적 함양을 강조하면서도 기미를 살펴서 때가 되면 우레처럼 소리쳐야 한다는 점을 「신명사도」와 「신명사명」 그리고 「신언명」 등을 통하여 『주역』이 담고 있는 의미를 담아내었다. 그 이름을 「주역』에서 가져온 산천재 시절에는 교육을 통한 후진양성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고 또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의 사후에 제자와 후학들은 그를 『주역」에 비유하여 5개의 괘로 설명하였으니, 모두 그의 출처대절이 의리에 합당한 것이라는 관점을 표현한 것이다. 남명에게 있어 『주역』은 그의 생전이나 사후에 상관없이 성리학적 수양론으로 인용되고 적용되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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