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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강식 (한국해양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항도부산 제3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69 - 20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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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에 부산진성전투와 부산포해전이 전개되었던 釜山浦는 임진왜란 전부터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으로서 해상 방어의 중심지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입장에서 부산포는 조선에서 일본군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본국과의 연락을 위한 운송 거점으로서 중요하였다. 이에 일본군은 1592년 4월 14일 임진왜란 첫 전투였던 釜山鎭城을 침략하여 점령하였다. 이후 일본군은 순차적으로 부산포로 상륙하여 한성으로 진격하였지만, 전선이 확대되자 일본 본국과의 연락 기지이자 병참 거점으로서 부산포를 적극적으로 장악할 필요성이 있었다. 1592년 9월 1일 전개되었던 부산포해전은 부산포 일대가 임진왜란 시기에 일본군의 교두보와 병참 기지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일본군의 근거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전투였다. 때문에 이순신의 조선 수군 연합함대는 해양이 아니라 포구 안의 적진으로 직접 뛰어들어 전투를 수행하는 위험을 감수하였다. 부산포해전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두 수군들이 연합하여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임진왜란 시기의 전세를 바뀌게 할 만큼 획기적인 승리였다. 부산포해전의 패배 이후 일본군의 수군은 서해로의 진출이 불가능해졌으며, 동시에 육군의 진출도 어렵게 되었다. 이후 일본군은 한반도 남단에 고립되면서 강화회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조선에서는 일본군의 군량 공급지와 보급지를 공략하여 승리함으로써 회복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부산포해전은 임진왜란 시기의 여러 해전 중에서 일본 전선을 많이 쳐부순 대첩 중의 하나였으며, 일본 수군의 기동력을 약화시켜 전쟁사 전체의 흐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전투였다. 이에 부산포해전은 임진왜란 4대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후대에 군수전에서의 승리 때문에 부산포대첩으로 평가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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