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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승옥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99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40 - 77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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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최근 양적, 질적으로 증가한 만경강 일대 점토대토기문화의 전개과정과 성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지역 점토대토기문화는 4단계로 구별할 수 있는데, I기(BC 3세기 초반~ 중반)는 문화의 성립기로서 적석목관묘와 토광묘가 단독묘로 축조된다. 이 단계에는 쇠퇴기의 송국리형문화도 공존하는데, 양 문화는 갈등이나 마찰로 인한 사회적 재편보다는 상호 호혜적 교류관계를 유지하면서 점차 통합의 길로 접어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II기(BC 3세기 중반~후반)에 이르면 묘제가 토광묘로 통일되고 중대형 군집묘가 본격 출현하게 된다. 군집묘는 전주 황방산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이 시기부터 등장하는 대규모 구상유구는 주변의 여러 중소형 공동체를 횡적으로 연결하는 제의행위의 장이 된다. 또한 군집묘 내부와 군집묘 간의 사회적 계층화가 본격 출현하는 시점도 이 단계로 볼 수 있다. III기(BC 2세기 초반~후반)는 또 하나의 문화적 변곡점이 되는데, 신소재의 철기가 분묘에 부장되기시작하며 분묘군이 양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 위계화는 더욱 심화된다. 마지막의 IV기(BC 1세기 초반이후)는 옹관묘가 묘제로 채택되며 군집묘의 수와 규모가 현저하게 감소한다. 또한 이전 시기까지 군집묘의 핵심지대였던 황방산 일대에 군집묘가 거의 축조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다. 점토대토기문화의이러한 전개양상으로 볼 때, 역사상의 ‘韓’ 또는 마한의 성립은 II기 사회로 볼 수 있으며, 그 중심은 수운교통과 혼합경제의 이점을 지닌 황방산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III기 사회의 질적 변환은 고조선 준왕의 남천과 관련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III기 후반부터 점진적 쇠퇴를 보이는 점토대토기문화는 IV기 사회로 진입하지만, 이 시점부터는 영산강을 위시한 전남 일대가 삼각형점토대토기문화의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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