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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민수 (창원대학교)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동양음악 동양음악 제41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39 - 82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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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20년대 중반 무렵 처음 등장해 1960년대 초까지 민속악을 대표하는 공연으로서 그 정체성을 공고히 하며 장기간 개최되었던 명창대회의 기간 중 이미 밝혀진 초기 명창대회와 유기 적 관계에 있는 1930년대를 연구범위로 삼아 그 공연유형과 공연내용을 살펴 명창대회의 공연양 상에 관해 논의해 보았다. 1920년대 중⋅후반의 태동기를 거친 명창대회는 1930년대 전국 각 지역에 분포해 있는 민속 악 공연의 주최자들이 공연의 명칭으로 우선적으로 선택하면서 전국적으로 활성화된다. 이 시기 명창대회의 공연유형은 민속음악단체, 신문사, 각 지역의 특정단체 그리고 순수 연주회의 기존 틀을 깨고 등장한 경연식으로 구분된다. 특히 신문사와 특정단체의 빈번한 공연개최는 1930년대 명창대회의 활성화를 견인한 주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1930년대 명창대회의 주최자들은 대명창이 주도한 조선성악연구회의 구성원과 전국 각 권번 의 기생들을 흥행보장을 위한 공연자로 가장 선호했다. 판소리 명창의 초청이 가장 많았던 조선성 악연구회의 경우에는 주로 판소리를 중심으로 이외에 각 공연의 출연진에 따라 남도잡가, 남도민 요, 가야금병창, 가야금연주 등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권번의 기생들은 경서도 잡가, 민요,40 동양음악 제41집다채로운 전통춤을 주요 레퍼토리로 구성하고 때에 따라 기악 그리고 신식장르던 신민요와 유행가 등을 추가적으로 공연했을 것으로 보았다.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까지 민속악 공연에는 명창대회를 포함한 다양한 공연명이 사용 되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명창대회는 1930년대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의 선택에 따른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 속에 민속악 공연을 대표하는 용어로 규정되어 활성화되면서 1930년 대 민속악을 전성기로 이끄는 주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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