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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노우에나오키 (京都府立大學) 임동민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5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91 - 354 (6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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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황제가 高句麗, 百濟, 倭의 군장이나 그 신료에게 除授한 將軍號 등의 官爵號를 토대로 그러한 여러 나라의 지배체제를 해명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이루어졌다. 특히 백제나 왜에서는 군주 자신의 官爵뿐만 아니라, 신료에 대한 將軍號 除正 요구도 여러 번 이루어졌고, 장군호를 비롯하여 중국 황제에게 除授 받은 관작이 중시되었다. 이 중에, 백제에서는 개로왕대에 이르러 적극적으로 백제왕의 官爵號 除正 요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것은 宋에게 백제의 국제적 지위를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집요하게 송에 백제의 軍政權을 요구하는 왜에게 외교적 견제를 가하기 위함이었고, 대내적으로는 개로왕이 제수된 관작, 특히 장군호를 토대로 신료들을 왕권 아래에 위치시키기 위함이었다. 개로왕은 중국 왕조의 장군호에 의거하면서 신료를 서열화하고 있었다. 그 뒤, 백제는 고구려의 공격으로 인해 왕도 한성이 함락되고, 일시적으로 멸망의 위기를 맞았다. 곤란한 상황에서 즉위한 동성왕은 南齊에게 신료의 장군호 제정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것과 연동된 백제 왕족, 귀족의 3품 장군에게는 백제 독자의 王號를, 4품 장군에게는 侯號를, 한인 관료의 3·4품 장군에게는 太守號를 신하들에게 수여하고 있었다. 5세기 후반의 백제에서는 백제 귀족이나 한인 관료들을 왕권 아래에 위치시키기 위해, 중국 장군호를 극히 중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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