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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83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45 - 81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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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도시의 장소성 혹은 로컬리티 형성과 관련하여 ‘기억의 정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구체적으로 근현대 인천 공간에서 제국주의 혹은 국가에 의해 기념일 제정과 기념사업을 통해 형성된 ‘집단기억’은 역사적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며, 오늘날 인천의 장소성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왔다. 개항 이후 인천은 서울의 ‘다리목’이자 전략적 항구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갑신정변과 임오군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등 정치적 격변 속에서 전쟁물자 조달을 통해 번창했고 성장했다. 러일전쟁 개시 초에 인천 앞바다에서 전개된 인천해전의 기념과 개항기념은 식민도시 인천의 집단기억의 핵심코드였다. 인천해전기념이 ‘승리와 지배’란 정치사회적 목적의 기능기억으로 역할했다면, 개항기념은 ‘근대화와 산업개발’이란 경제적 측면의 기능기억이었다. 일본인이 떠난 후 정치적 목적의 인천해전 집단기억은 소멸되고, 이를 대체한 것이 ‘맥아더의 인천상륙’이었다. 이 새로운 집단기억의 제도적 장치는 1957년에 세워진 맥아더 동상, 1980년 인천상륙작전 30주년기념으로 세워진 인천지구전적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1984년 준공된 인천상륙작전기념관과 자유수호의 탑이었다. 그런데 정치환경 변화에 따라 전쟁 기념의 정치적 집단기억은 바뀌었지만, 근대화·산업화를 상징하는 개항관련 집단기억은 경제개발과 함께 그대로 지속되었다. 개항기에는 영국인 무역상 존 스톤의 별장과 독일 무역상 세창양행이 위치했으며, 일제시기에는 인천해전에서 승리한 전함 치요다호의 마스트를 세워 두었고, 그리고 해방 후에는 맥아더 동상이 건립된 곳인 자유공원과 이를 중심으로 한 개항장 일대는 인천의 ‘기억의 장소’이며, 인천 장소성의 벡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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