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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백제연구 백제연구 제50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83 - 111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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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산강유역 고분에 부장된 금동관, 금동신발, 은제관식, 대금구 등 금속제 복식유물이 백제 중앙 및 여타 지역의 그것과 비교하여 어떤 특징이 있고 변천 과정은 어땠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시사하는 백제 왕권과 영산강유역정치체 사이의 관계 변화를 위세품과 신분표상품이라는 개념으로 추론한 것이다. 5세기 중엽까지는 백제 왕권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는 세력권의 경계를 확대하거나 가야, 왜 등 외부 정치체와의 교섭, 교류를 위한 해상교통의 요충지를 확보하고 영산강유역을 영향권 내에 포함시키기 위해 위세품을 사여하였다.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전반까지는 영산강유역과 같은 일정한 범위를 대상으로 하되, 그 공간에서 여러 유력 집단에게 분산적으로 위세품을 사여함으로써 해당 지역을 적극적으로 지배하고자 하는 전략을 구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위세품을 통한 관계는 6세기 중엽 이후 은제관식 등 신분표상품을 통한 관계로 바뀐다. 그런데 나주 복암리 3호분 출토 은제관식의 형태와 장식, 그리고 금화관식의 존재는 복암리 고분군 축조 집단이 백제 왕족이나 중앙귀족에 버금가는 세력이었음을 시사한다. 중앙에서 파견한 지방관이 아닌 것은 석실 구조나 무덤의 조영 과정을 보면 확실하다. 그런데 일습이 되어야 할 은제관식과 역삼각형 관식틀을 집단 내 여러 사람이 나누어 부장하는 것은 신분표상품의 권위를 개인보다는 집단 단위로 내세웠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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