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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항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102輯
발행연도
2022.4
수록면
51 - 8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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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박정희가 문교부 연두 순시에서 충효를 강조하자 교육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서 충효의 원리가 확산되었다. 충효는 우리 고유의 사상적 전통이라 선전되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상사 연구는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오히려 충효의 강조가 기초한 것은 일제가 구성한 한국 유교사 및 황도 유교의 이데올로기였다. 박종홍은 한국 사상사를 다시 구성하고자 하였지만 여전히 일제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종홍의 주장은 널리 수용되어 정책적으로 진행된 유교 전통과 충효 강조의 학문적 배경이 되었다.
충효는 일반적으로 유교적 전통의 부활로 인식되었으나, 근대 사회로 접어든 상황에서 유교 전통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수용되는데 한계가 있었다. 김형효는 충효를 서양 사상과 접목하여 사회적 권위와 위계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재해석했다. 그의 주장은 박근혜가 주도한 ‘새마음운동’ 및 충효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배경으로 사회 윤리로 확산되었다. 이는 1970년대 민중 운동의 확산에 대한 정치적인 대응이었고 이를 통하여 사회적 평등에 반하는 서열과 복종의 종적 지배 질서를 만들고자 하였다. 1990년대까지 학교 교육에서 충효가 강조되었으며, 그 흔적은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목차

국문초록
머리말
Ⅰ. 해방 이후의 유교 인식
Ⅱ. 일본인 연구자들의 한국 유교사 인식
Ⅲ. 박정희 정권의 충효 강조
Ⅳ. 산업사회에서의 충효의 의미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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