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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보광 (가천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89호
발행연도
2022.11
수록면
71 - 102 (32page)
DOI
10.21490/jskh.2022.11.8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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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예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즉위하고 나서 정무를 개시하게 되는 정치적 시차를 의례와 정치적 맥락을 묶어 정치적 프로토콜로 설명하고자 하는 데에 있다. 예종이 1122년 4월 8일에 훙서하면서 태자이던 인종이 즉위하였다. 그리고 4월 28일을 시작으로 인종에게 ‘정전에 납시어 정사를 볼 것(御正殿·聽政)’을 요청하는 표문이 세 번 이어졌고 인종은 세 번째 요청을 받고서야 윤허하는 교서를 내렸다. 신하들은 以日易月의 원리에 따라 인종이 免喪되었음을 주장하면서 이제 왕이 정전으로 나아가 정사를 돌볼 것(御正殿·聽政)을 반복적으로 요청하였다. 반면에 인종은 이일역월의 원리가 人情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함을 지적하면서 자신은 3년상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거부하였다. 최종적으로는 仁政이 효의 실천이라고 하는 신하의 논리를 인종이 수용하면서 일단락되었다. 표문과 교서 도합 6편의 문서는 정항, 홍관, 이봉원, 김부일이라는 네 명의 문한관이 작성하였으며, 정항과 김부일은 표문과 교서 각 1편씩 두 편을 작성하였다. 이는 표문과 교서라는 문서로 君臣이 자기 주장만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君臣 사이에 정형화된 정치적 대화였음을 암시한다. 또 예종의 장례가 4월 26일에 끝났는데 4월 28일자로 첫 번째 표문이 작성되었다는 점은, 예종의 장례가 免喪의 계기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신왕 즉위와 정무 개시 사이의 정치적 시차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나아가 신하들의 요청을 수용한 인종은 5월 18일에 정전인 건덕전에 거둥하여 재신에 대한 인사를 시행하였다. 이로써 ‘정전에 납시어 정사를 볼 것(御正殿·聽政)’을 요청한 상황이 실제로 구현되었다. 결국 일련의 표문과 교서로 오간 정치적 대화는 인종이 政事를 돌보는 진정한 君王으로 전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군신 사이의 ‘합의된 정치적 상징 행위’이자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이를 통해 君臣과 朝野는 신왕을 왕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정무 행위의 정당성을 만들어 내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睿宗의 薨逝와 仁宗의 즉위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
3. ‘御正殿·聽政’을 둘러싼 君臣間 논리
4. ‘御正殿・聽政’에 담긴 정치적 의미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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