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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경수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서울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비교문화연구 비교문화연구 제28집 제2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97 - 184 (88page)
DOI
10.17249/CCS.2022.12.28.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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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미군이 한반도의 남부를 점령하였던 3년 동안에 활동하였던 송석하의 업적을 검토한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기존의 잘못된 인식과 오해를 풀기 위해서다. 송석하에 대한 주된 오해는 조선민속학회를 중심으로 미군점령기 동안에 민속학적인 활동을 하였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인 자료들을 정리해서 사실관계를 파악한 위에서 오해의 근거를 밝히고, 송석하와 조선민속학회에 대한 이해를 제시한다. 진단학회와 조선산악회의 대표로서 사계의 권위를 인정받고 학술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였던 송석하의 입지는 미군정청과의 관계로 전개된
다. 국립민족박물관의 관장으로 임명되었던 송석하가 국립서울대학교 교수에는 임용되지 못하였다. 양자가 다 군정청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엇갈린 대접을 받은 송석하의 처신에 대해서 논의해보는 것은 그가 실패하였던 인류학교수직의 도전과정을 생각하게 한다. 좌절과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되는 송석하의 주권의식이 겨냥한 것이 사망 직전에 제창한 문화주권의 문제다. 문화주권이란 문제는 앞으로 후학들이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활동 이외에도 송석하는 연극동맹위원장으로 피선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활동의 주도적 지위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고는 그러한 과정에서 드러난 송석하의 활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결론적으로 제시한 하나의 표는 미군점령지 하에서 전개되었던 송석하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일제식민지 하에서 민속학자로서 활동하였던 송석하는 새로운 시대인 미군점령지 하에서는 인류학적인 작업에 몰두하였음도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 부분은 필자의 주 관심인 한국인류학사와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송석하가 타계 직전에 “문화주권”이라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주권이 없었던 땅에서 살았던 평생 동안 일제식민지 기간 동안에 뼈저린 경험이 있었고, 미군점령기 동안 비원의 서울대교수가 되지 못하였다. 그것이 모두 주권과 관련된 문제였다고 생각한 송석하가 최후로 부르짖었던 것이 문화주권이었다. 이 문제는 후학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

목차

1. 서언: 점령지와 “해방공간”
2. 계몽과 권력
3. 권위의 소재와 충돌: 전통과 명목
4. 유명무실의 조선민속학회
5. 결론: “문화주권(文化主權)”을 위하여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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