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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리샤오칭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47권
발행연도
2022.5
수록면
35 - 7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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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麟坪大君(1622~1658)의 12차례 대청사행을 살펴보고, 그의 대중국 인식을 『燕途紀行』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인평대군은 인질과 사신으로 자주 청을 왕래하였으며, 왕족 출신인 그의 대중국 인식은 관료들의 인식과 차이를 보인다. 『연도기행』은 인평대군이 12차례의 사행 가운데 11번째인 1656년(효종 7)의 사행을 기록한 것이다. 『연도기행』에는 이전 10차례 사행에서 보고 들었던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1656년(효종 7) 당시의 사행일기보다 회고록의 성격이 강하다. 인평대군은 여행자로서 개인의 사행 체험, 연행 노정의 고초와 심정을 기록하였고, 사신으로서 연로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는 조선의 산성 현황과 청의 요동 병력 배치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인평대군은 전란이 재차 발생할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산성 보존과 민심의 수습을 중요시하고, 청의 요동 병력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인평대군은 청에 거주하는 역관과 조선인을 통해 청 내정 관련 정보를 수집하였다. 그는 청의 정치 운영 문제를 지적하면서 남명 정권의 보존과 부흥을 기대하고 있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인평대군이 왕족으로서 중국의 흥망에 대한 인식이다. 인평대군은 명의 멸망이 山海關을 열어준 吳三桂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운수가 쇠해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나라의 존망에 人和 즉 인심 향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명의 멸망 원인에 대한 그의 고민은 왕족인 통치자로서의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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