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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광성 (주안대학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복음주의선교신학회 복음과 선교 복음과 선교 제60권 제4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43 - 8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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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회는 1912년 총회를 창립하면서 산동선교를 결의했다. 총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2년부터 산동선교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 방지일 선교사가 소천하면서 그의 선교사역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방지일의 선교사역에 관한 기존의 연구는 주로 1937년 파송부터 1957년 귀환까지 21년간 진행된 방시일의 선교사역과 선교신학을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제한된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동일 연구주제를 반복적으로 기술하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본 연구는 방지일의 선교사역에 영향을 미친 종교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었다. 방지일은 1937년에 중국 산동지역으로 파송되어 1957년까지 21년 동안 사역하였는데, 그 대부분의 시기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있던 시기였다. 특히 방지일이 파송된 1937년부터 일제는 중국을 침략했고, 방지일은 침략국 일본 국적으로 피침략국 중국에서 선교사역을 했다.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하고자 하는 일제는 식민지배지역을 대상으로 종교통제정책을 실시했고, 방지일은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일제가 점령하고 있던 지역은 미군정이 실시되었고, 중국 전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내전이 발생했다. 방지일은 한국인을 국내로 송환하는 사역과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을 구제하는 사역에 집중했다. 이 때 미군정과 국제기구는 방지일 선교사역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이후부터 방지일은 사회주의 종교정책의 영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1957년 귀국하게 된다. 방지일의 20년 선교사역은 내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주변 환경의 영향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는 일제의 종교통제정책, 중국의 종교자립정책, 중국공산당의 삼자혁신(애국)운동이 근간이 된 종교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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