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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주용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48호
발행연도
2022.6
수록면
25 - 4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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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거대한 함성은 만주지역 한인사회에도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다. 일제는 이주한인과독립운동세력의 분리를 위해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사용하였다. 회유는 친일파를 양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위협은 독립운동근거지를 직접 파괴하는 이른바 ‘간도출병’으로 나타났다. 일제의 간도침략은 독립운동의 지형과 한인사회에도 지각 변동을 초래하였다. 민족교육기관을 파괴하고 교사를 살해하면서 독립운동가를 ‘색출’하려 했던 일제는 한국독립군들의 저항을 받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 바로 청산리 대첩이었다. 청산리 대첩은 3·1운동 이후 축적된독립운동의 역량이 제국주의 일본군을 상대로 발휘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 글에서는 제국주의 일본군을 상대로 독립군 연합부대가 승전을 거두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인적 자원을 분석하였다. 청산리 대첩에 참여했던 독립군들은 의병출신, 대한제국육군무관학교 출신, 신흥무관학교 출신 등 군사적 지식을 이미 정식으로 습득했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은 일시적으로 연합한 독립군들의 승전이 아니라 10여년을 준비해온 독립전쟁의 결과물이었음을 인적 자원들의 면면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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